[타레베지 동맹 4주년]
베지터는 자신을 부드럽게 쓰다듬는 타레스의 손길을 느꼈다. 내일이면 또 며칠, 길게는 수 달 동안 타레스의 이 온기를 느낄 수 없다는 것이 그를 쓸쓸하게 했다. 아쉬운 기분이 들어 타레스의 품으로 몸을 더 밀어 넣자, 그 역시 베지터의 작은 몸을 부드럽게 감싸 안아준다.
“베지터.”
“응?”
“원정을 떠나고 나면 네게 좌표 하나를 보낼 거야.”
“…좌표?”
“그래. 좌표를 받으면 그곳으로 와주기만 하면 돼. 왕자의 휴가기간을 넘길 정도로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끌어안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베지터는 자신을 강하게 안고 있는 팔을 힐끔 보고는 바로 타레스와 눈을 마주쳤다. 자신을 바라보는, 강하게 빛나는 그의 눈빛에 베지터는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없었다.
과연, 타레스가 원정을 떠나고 난 며칠 지나지 않아 베지터에게 좌표 하나가 송신됐다. 혹성 프리저 No.79에서는 꽤나 떨어진 지점이었다. 어차피 지금은 휴가 기간. 프리저가 <특별히> 포상휴가라며 기간도 넉넉하게 준 터. 타레스의 말대로 휴가 기간 내에 다녀오기엔 무리가 없는 지점이다.
베지터는 좌표를 받자 마자 고민 없이 떠날 채비를 했다. 내퍼와 라데츠에게는 휴가 기간이니 기분전환 하고 오겠다며 대충 둘러댔다. 내퍼는 내심 베지터 혼자 보내는 것을 불안해하는 눈치였으나, 베지터는 그런 내퍼의 걱정은 가볍게 무시했다.
모든 준비를 마친 베지터는 혹성 프리저 No.79를 떠났다. 곧 만나게 될 타레스를 그리며.
쿵-하는 거대한 착지음이 고요한 행성에 울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그란 포드에 문이 열리고 이내 작은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베지터였다. 그는 포드에서 나와 도착한 행성을 바라보고는 숨을 삼켰다. 물도, 나무도, 동물들도 하나 없는 메마른 땅덩어리에 위압적으로 혼자 덩그러니 자리잡고 있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 고개를 위로 들어도 나무 끝부분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크기에 압도된다.
“이게 대체….”
“베지터.”
익숙한 목소리. 고개를 돌린 그곳엔 그가 그토록 보고싶었던, 이곳에 오기 전부터 계속 생각하고 있던 사내가 있었다.
“타레스.”
베지터는 타레스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다. 어째서 이런 다 죽어가는 황폐한 행성으로 자신을 부른 것이며, 이세상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이 나무는 무엇이냐고. 허나 입이 쉬이 떨어지지 않는다. 꼼짝 않고 가만히 서있는 베지터를 향해 타레스는 살풋 웃는다.
“일단 이쪽으로.”
비정상적이라고도 생각되는 거대한 나무 쪽으로 날아가는 타레스의 뒤를 베지터는 따라 나섰다.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거대한 나무 중앙에 있는 구멍 속. 이제는 희미하게 기억나는, 어렸을 적 본 궁전의 홀과도 같은 모습에 베지터는 마른침을 삼키고는 어서 설명해보라는 듯 타레스를 바라봤다.
“이건, 신정수야.”
“…신정수…?”
“신들이 먹는 열매를 맺는 귀한 나무지. 행성이 이렇게 된 건 이 나무 때문이야.”
베지터는 타레스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는 품속에서 붉은 열매를 꺼내들었다. 울퉁불퉁한 표면에 괴상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 붉은 열매를 내려다보던 타레스가 베지터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이건 신들만이 먹을 수 있다는 신정수의 열매. 인간이 함부로 먹었다간 죽을 수도 있어. 하지만, 그것을 버텨내면 지금의 몇 배는 강해질 수 있어.”
“…너는, 그걸 먹은 건가.”
“그래.”
타레스는 베지터에게 손을 내밀었다.
“왕자, 나와 함께 가자.”
베지터는 제 앞에 쭉 뻗어온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가 그 주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사뭇진지한 표정으로 자신를 바라보는 사내의 모습에 심장이 콩콩 뛴다.
“프리저의 족쇄에서 자유롭게 해줄게.”
그 당돌한 말에 베지터는 흡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벗어난다..? 프리저의 손아귀에서..? 그는 떨리는 눈으로 타레스를 본다.
“아직은 힘이 부족하지만 머지 않았어. 조금만, 조금만 더 있으면 프리저보다 훨씬 강해질 거야.”
“그, 열매의 힘으로?”
“그래. 그러니까,”
타레스는 손을 거두고 열매를 쥐고 있던 다른 쪽 손을 베지터에게 내밀었다.
“나와 함께 하자. 왕자를 자유롭게 해줄게. 이 세상 모든 행성을 네게 쥐어 줄게.”
베지터는 타레스의 손에 들려 있는 붉은 열매를 바라본다. 신이 아닌 인간이 먹으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신들의 열매. 그는 마른침을 꼴딱 삼키고 떨리는 손으로 그 과실을 들었다. 먹으면 죽을수도 있는 과실을, 타레스가 섣부르게 나에게 주지 않았을 거야. 무언가 확신하는 것이 있어 이 열매를 내게 내민 거겠지.
베지터는 타레스를 믿었다. 그리고 한입, 그가 준 신정수의 열매를 입에 물었다.
달콤한 과즙이 입안 가득 퍼지고, 이내 버티기 힘든 격통이 강타했다. 양 다리로 제대로 설수 없을 정도의 고통에 휘청대는 자신을 타레스가 부축해줬다. 그는 고통 어린 신음을 내뱉는 베지터를 품에 꼭 안고 괜찮아. 왕자라면 버텨낼 수 있어. 괜찮아. 하며 끊임없이 되뇌었다. 마치 본인에게 말 하는 듯.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억겁과도 같은 시간동안 타레스의 품 안에서 고통으로 바르작거리던 베지터의 몸이 일순 멈추었다. 베지터의 고통에 찬 신음소리가 서서히 가라앉는다. 그리고, 고통으로 인한 생리적인 눈물로 젖어 있던 눈꺼풀이 애처로이 파르르 떨리더니 흑요석 같은 검은 눈동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작게 눈을 두어번 깜박이자 눈꼬리에 맺힌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베지터는 자신의 몸을 강하게 끌어안는 단단한 팔에 시선을 돌렸다.
“…타레스….”
끊어질 듯 희미한 목소리가 이름을 불렀다.
“응.”
“다시는…, 이런 거 겪고 싶지 않군….”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그리 말하는 베지터에 타레스는 땀에 젖은 그 이마에 작게 키스했다.
“날 믿어줘서 고마워. 그리고, 새롭게 태어난 걸 축하해, 왕자.”
타레스의 말에 베지터는 작게 웃었다.